Fall into the Story

이야기가 있는 블로그

설교

요즘은 설교를 ‘참고’ 듣는 것 같다.

이놈의 한국의 기질은 어딜 가도 동일하다.

누가 설교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표준을 제시한 적도 없는데 뭐 이리 공장에서 찍어내기라도 한 듯이 비슷한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리트윗한 트윗이 기억이 난다.

방송국도 그렇다. 유행을 한 번 타면 너도 나도 비슷한 유형의 프로그램을 찍어 낸다.

문제는 교회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요즘은 차라리 가톨릭이 부럽다고 느껴진다. 정해진 예식과 확고한 틀을 가지고 거룩하고 경건하게 미사를 시행한다.

최소한 이러한 명확한 틀은 ‘내가 듣고 싶은 얘기를 해주세요’의 태도가 아닌 이 예식에 우리가 참여하는 바가 분명하게 된다.

개신교가 미사 대신 강대상이 올라왔다고 해서 말씀에 대한 진중함과 무거움까지 함께 버리려고 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요즘 개신교 설교는 말씀을 풀어 설명하기 위하여 너무 많은 예화와 자신의 경험 이야기가 곁들어지면서 이러한 무거움과 경건함이 많이 감소하게 된 것 같다.

이해를 돕기 위해 행해진 이러한 행위들이 정도를 넘어서서 오히려 말씀으로의 초청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설교는 성경 말씀으로의 초청이다. 이 시간에는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마저 이 성경말씀으로의 초청에 초대된다. 즉 설교자가 초청하고 성도는 초청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와 성도 모두 우리의 초청자이신 성서말씀으로부터 초청된 손님이라는 것이다.

요즘 설교자들은 이 사실을 자주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예배라고 하는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예화를 쓸 겨를이 없다. 정말 우리 모두 초대된 사람으로서 말씀을 살펴보다보면 결코 경험 얘기를 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말씀으로 초청되었을 뿐이고, 이후에 말씀이 주시는 깊은 깨달음으로 각자의 삶을 반성하게 될 뿐이다.

말씀이 내 마음으로 들어와서 내게 어떤 작용을 하게 될 지는 각자의 해석에 맡겨져야 할 부분인데, 요즘 강단은 이 부분마저도 너무 ‘유도심문’하듯이 설교가 이루어지고 있다.

설교강단은 답을 풀어주는 곳이 아니라 질문을 던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곳이다. 나를 위한 이야기가 들려지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이 강단의 소리를 듣기 위하여 엎드려져야 하는 곳이다.

강단의 기준은 언제나 성경말씀이다. 이 기준으로부터 주어진 권위와 풍성함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어야 한다.

언제까지고 ‘성경에 대한’ 이야기하기를 그치고 이제는 ‘성경 자체’를 이야기하자.

정말 중요한 관점인 것 같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예 포기하고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고 합리화 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완전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요, 그 책임 역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관점인 것 같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예 포기하고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고 합리화 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완전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요, 그 책임 역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신학펀치 32회. 가톨릭은 이단인가요?

드디어 가톨릭과의 대화가^^

이번 추석 사진들^^

@captured by iPhone5 with Hipstamatic

2014년 8월 31일 김동호 목사 설교 (높은뜻 푸른교회)

설교를 들으면서 특별히 와닿았던 부분

"사람들이 시간 계산할 줄을 몰라요. 남은 날 계수할 지혜가 우리에게 없어요."

참 그렇다. 무릎을 치며 동의했다. 남은 날을 계수할 지혜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동력이 되던가.

반대로 남은 날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가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우리 삶의 가치관은 놀랍도록 전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이 얼마나 작고 연약한지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해서 깨달았다. 욥이 그렇고 전도서의 저자도 그러하였다.

또한 누가복음의 특수자료인 16:19-31에 등장하는 부자와 거지 이야기도 그러하다. ‘나사로’라고 하는 거지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지만, ‘부자’라고 하는 사람은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지만 죽어서 지옥에 가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부자’는 남은 다섯 형제들을 걱정했지만, 이미 자신의 통제를 떠난 일들이었다.

위 설교에 나오는 것처럼 한 평생 차를 바꿀 수 있는 횟수는 한정 되어 있다. 한 평생 집을 바꿀 횟수도 정해져 있다. 인간은 영원히 이렇게 살 수 없다. 언젠가는 이 모든 일들이 끝나고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인간은 살면서 차 바꾸다가 가고, 집 평수 늘리다가 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쁨 없고 타율적인 삶인가.

한 평생을 살면서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에 내 삶을 드리는 사람은 복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리에 나의 발을 담그는 사람은 복이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것이 참 지혜이고 이것이 참 복이려니 한다.

나는 뮤직플레이어로 “지니”를 사용중이다.

오늘 문득 떠올라서, 꿈이 있는 자유의 ‘소원’을 검색했다.

참 놀랍게도 검색 리스트 중 가장 첫번째에 올라와 있더라.

심지어 리스트에 그 유명한 가수 플라이투더스카이에 이승철, 윤도현, 동방신기 등등이 있었는데 말이지…

아무튼 참 감사하게도 편리하게 검색해서 곧바로 들을 수 있었다.

꿈이 있는 자유의 소원을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리스트에서 우선적으로 검색 됐을 것이다. 

노래의 가사처럼, 이 노래를 찾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높은 산이 되려고 하기 보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그 낮은 동산이 되기를 가슴 속에 따뜸함으로 소망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아주 오랜만에 이 앨범을 들으며 하루 일과를 정리해본다.

나는 뮤직플레이어로 “지니”를 사용중이다.

오늘 문득 떠올라서, 꿈이 있는 자유의 ‘소원’을 검색했다.

참 놀랍게도 검색 리스트 중 가장 첫번째에 올라와 있더라.

심지어 리스트에 그 유명한 가수 플라이투더스카이에 이승철, 윤도현, 동방신기 등등이 있었는데 말이지…

아무튼 참 감사하게도 편리하게 검색해서 곧바로 들을 수 있었다.

꿈이 있는 자유의 소원을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리스트에서 우선적으로 검색 됐을 것이다.

노래의 가사처럼, 이 노래를 찾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높은 산이 되려고 하기 보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그 낮은 동산이 되기를 가슴 속에 따뜸함으로 소망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아주 오랜만에 이 앨범을 들으며 하루 일과를 정리해본다.

텀블러에서 사진 업로드 할 때 적용되는 제한 규정입니다.
일반 이미지 파일은 10Mb를 넘지 말아야 하고, 특히 소위 움짤이라고도 하는 움직이는 사진파일은 용량 1.75Mb 이하에 가로 500픽셀이라는 제한이 적용되네요.
어쩐지 어떤 움짤은 올리고나면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더라고요. 대부분 용량 초과될 경우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텀블러에서 사진 업로드 할 때 적용되는 제한 규정입니다.

일반 이미지 파일은 10Mb를 넘지 말아야 하고, 특히 소위 움짤이라고도 하는 움직이는 사진파일은 용량 1.75Mb 이하에 가로 500픽셀이라는 제한이 적용되네요.

어쩐지 어떤 움짤은 올리고나면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더라고요. 대부분 용량 초과될 경우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추석도 곧 오려나보다 ^^

그리고 추석도 곧 오려나보다 ^^

요즘 참 하늘 사진 찍기 좋은 날이다.

가을이 오긴 오려나보다.

요즘 참 하늘 사진 찍기 좋은 날이다.

가을이 오긴 오려나보다.

목사님 댁에 오니 진순이 목욕시키고 계시는 중

이와중에 방울이는 질투 폭발ㅋㅋㅋㅋㅋㅋㅋ

Older →